Creative Reading/독서

상처받지 않을 권리 다시 쓰기(보드리야르 편) by 강신주

함께♡ 2025. 1. 24. 14:52

네 번째 장 보드리야르 편을 살펴보겠다.

 

보드리야르: 자본주의의 목적은 소비! 소비사회에 대한 냉철한 진단

 

1.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소비하라

상업 자본이 공간의 차이를 이용하여 이익을 얻는 것과는 다르게 산업자본은 시간의 차이를 이용하여 이윤을 남긴다. 새로운 유행을 만드는 산업자본의 행위 자체가 시간 차이를 만들어 내고 이는 이익을 창출한다. 산업자본은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이 만든 상품을 하나의 유행으로 만들고 미디어는 산업자본의 광고료로 유지된다. 결국 산업자본과 미디어는 공생 관계이다. 

한편, 각종 상품은 객관적 기능의 영역을 넘어 "암시적 의미의 영역"에서 "기호"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즉 세탁기가 처음 나왔을 때 세탁기를 산다는 것을 세탁의 기능을 넘어 "행복, 위세"와 같은 '기호'를 상징하였던 것이다. 유행의 의미와 연결시켜 보면 우리가 만나게 되는 유행의 핵심은 상품이 가진 사용가치가 아니라 기호가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인간에게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려는 욕망 혹은 허영과 연결되어 우리의 소비를 더욱 부추기게 된다.

 

2. 자본주의는 무엇 때문에 발달했나?

보드리야르는 좀바트르라는 철학자와 사치에 대해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좀바르트는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한 산업자본주의는 거대한 사치를 가능하게 하였다고 한다. 생존을 넘어서는 부의 축적, 성생활의 자유로움, 다른 계급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려는 계급의 탄생, 향락의 중심지로서 대도시의 발달. 보드리야르가 좀바르트와 다른 점은 그는 인간의 허영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것을 증폭시킨 산업자본의 전략에 더 주목했다는 것이다.

 

3. 소비사회의 계보학, 거대한 욕망의 집어등

자본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상품을 필요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즉 기호 가치로서 소비자를 유혹해야 한다. 한편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란 소비의 자유이다. 소비사회에서 우리는 자신의 욕망과 개성을 자유롭게 분출하고, 그래서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향유한다는 일종의 환각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 욕구조차 강요되고 합리화된 생산력에 불구하다고 보드리야르는 경고한다. 또한 소비사회에서는 우리는 우리가 노동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림으로써 유대감을 잃고 "서로 무관심한 군중"이 된다. 나아가 소비영역에서 "소비의 대상이 지위의 계층화"를 만들어 냄으로써 결국 소비시장은 연대나 소통의 공간이 아니라 허영과 욕망의 각축장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는  고립된 개인들을 만들어 내고 심지어 한 인간의 내면마저 산산이 쪼개어 분열증적 소비 촉진 경향으로 심화되고 있다. 

 

4. 상징가치, 구원의 유일한 희망

보드리야르는 사물은 네가지 가치를 가진다고 한다. 사용가치(도구), 교환가치(상품), 상징가치(상징), 기호가치(기호)이다. 도구, 상품, 기호라는 사물이 가진 생산주의적 측면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동기가 작용된다. 그러나 상징으로서 타인에게 주는 선물은 받는 사람의 정신과 생활의 만족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즉 상징적 측면은 인간을 공존의 가치를 중시하는 인문주의적 만남의 장으로 이끈다. 

 

5. 보드리야르의 멘토, 바타유 

보드리야르에게 증여 논리의 중요성을 가르쳐줬던 사람은 에로티즘으로 유명한 철학자 바타유이다. 바티유는 체계는 그것이 개체 수준이든 아니면 사회 수준이든 과잉 에너지가 있으면 반드시 그것을 아낌없이 소모해야만 잘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타유가 제안한 '일반경제'의 핵심 논리이다.  바타유의 일반경제의 논리에서 '저주의 몫'이란 아무런 대가 없이 진행되는 무조건적인 소비나 소모를 의미한다. 과잉 에너지를 적절히 배출하지 못하면 우리의 삶과 사회는 비극적으로 폭발한다는 것이다. "불유쾌한 파멸"의 길을 따라 전쟁이나 사치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유쾌한 파멸"의 길을 따라 증여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바타유의 이러한 질문은 소비사회를 넘어서는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다. 

 

6. 불가능한 교환의 가능성

진정한 선물에는 사용가치, 교환가치, 기호가치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의 사랑이나 애정의 표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상징하는 가치만 존재한다. 보드리야르는 생산중심주의가 종극에는 어떤 파국을 낳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우리가 "유쾌한 파멸', 즉 선물의 논리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세계와 나를 고상하고 훌륭한 목적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교유한 선물로서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교환만은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향유할 수 없게 될 것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오직 교환가치의 측면에서만 바라보게 될 것이다.  

 

선물의 논리.. 이것이 자본주의에서 파생되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관점의 변화는 다른 인식의 세계를 열어주겠지만 가난, 불평등, 억압체제 등과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을 것 같다. 모두가 의식의 성장을 이루어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기부함으로써 좀 더 밝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겠지만 보통의 소시민들에게는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이 넉넉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