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부르디외의 이야기를 살펴보겠다.
부르디외 : 가난한 이웃이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
1. 아비투스와 두 가지 미래
아비투스란 인간의 의식을 결정짓는 무의식적인 경향으로 "구조화된 구조"로서 아비투스가 과거의 방향을 가리킨다면 "구조화하는 구조"로서 아비투스는 미래의 방향을 가리킨다. 전자본주의적 인간에게 미래란 '잠재적으로 올 것'으로 이해되고 자본주의적 인간에게 미래란 '가능성의 장'으로 표상된다. '가능성의 장'으로서 미래란 다양한 경우의 수 가운데 인간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는 화폐를 사용함에 있어 "상호 양립이 가능한 미래의 용도들 가운세서 시급히 필요한 것들과 관련하여 '합당한' 선택을 경정하는 계산"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2. 그들에게 농사는 노동이 아니다.
전자본주의의 농부는 자신의 노동이 자연을 개조시키고 변화시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노동을 마치 자연에 바치는 제물처럼 생각했다. 즉 자연이 신적인 존재로서 농부의 노동을 자연에 바친 공물로 간주하고 농부의 수확은 농부가 바친 공물의 대가로 자연이 내려준 선물로 여긴 것이다. 이것은 결국 인간의 노동 행위를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거대한 운동으로 여기게 하였고 노동은 사회적이자 종교적 의무이며 소명이었다.
3. 왜 실업자나 노숙자들은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가?
부르디외는 "미래가 없는 사람에게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가능성, 나아가 집단적으로도 새로운 미래의 출현을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라고 말하였는데 여기서 미래가 없는 사람은 전자본주의 사람을 일컫는다. 산업자본주의의 화폐경제는 인간의 시간의식을 미래를 "가능성의 장"으로 바꾸어 가장 합리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속에서 모든 사람이 그러한 변화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업자나 노숙자들은 여전히 '잠재적으로 올 것'의 영역에 매몰되어 있다. 최소 생활을 영위할 여력마저 없기에 그들은 과거의 전자본주의 시대 농민처럼 전체 체계를 자신의 시야를 통해 합리적으로 성찰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억압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가난한 이웃들이 최소한 극단적인 생계의 위협에서 벗어나 미래를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으로 여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 칸트의 미학 VS 민중의 미학
칸트에 따르면 진선미의 세계는 우리의 관심이 이론적 관심이냐, 실천적 관심이냐, 아니면 무관심이냐에 따라 다르게 드러난다. 이는 상당한 교육과 학습의 대가로만 얻을 수 있는 분별력이 필요하고 이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르주아계층으로 한정될 수 밖에 없다. 이런 미학적 능력(순수 미학)은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것이라기보다 부모나 가족의 역량에 따라 후천적으로 재생산된 것이 대부분이다.
부르디외는 부르주아의 미적 의식을 분석함으로써 칸트의 미학이 추구하던 순수성을 비판한다. 부르디외는 현재 대중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름다움이란 물질적 조건을 다르게 갖고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느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상류 계급은 "자신 이외의 지시 대상은 갖고 있지 않는 이미지"에서 찾고 노동자계급은 "모든 미적인 이미지가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기를" 원한다.
5. 미적 취향, 가장 완고하고 폭력적인 구별 원리
"특수한 생활조건과 관련된 조건의 산물인 미적 성향은 동일한 조건의 산물인 모든 사람들을 함께 묶어주는 반면 그 밖의 다른 사람들과 구분시켜준다"라고 부르디외는 <구별짓기>라는 책에서 밝힌다. 미적성향이야말로 가장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작용하는 아비투스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미적 취향은 "가공할 만한 폭력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6. 인간의 허영와 자본주의의 유혹
부르디외는 사회적계급관계에서 경제적 자본 이외에 문화자본, 학력자본, 사회관계자본이 더 고려된다고 한다. 하류 계급의 사람이나 벼락부자들이 상류 사회로 편입되고자 하는 것에는 인간이란 존재의 치명적인 약점이 허영이 있다. 산업자본주의는 이 허영이라는 인간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다. 상류계급의 구별짓기의 욕망과 하류계급의 신분상승의 욕망은 화려한 소비 사회를 만들게 된다.
돈이 없어도 명품의 가방이나 시계를 사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잘 해석해 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월감, 열등감, 구별짓기... 이 모든 게 분리된 개체라는 무명에서 시작된 많은 오류들의 한 가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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