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을 권리 다시 쓰기(페라리스 편) by 강신주
드디어 마지막 마지막장이다.
페라리스 : 웹자본주의, 자기 긍정이 자기 착취가 되는 세계
1. 다큐멘탈리티, 자본의 비밀을 푸는 열쇠
페라리스는 다큐멘탈리티란 사회적 대상이 "종이 문서, 자석 지지대 또는 사람들의 머릿속 기억과 같은 어떤 종류의 지지대에 새겨져 있는 사회적 행위"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대상들은 공간에서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시간상 제일 뒤에 온다. 그것들은 인식하거나 적어도 사용하는 주체들, 어떤 경우에는 그것들을 구성하는 주체들에 의존하다. 쉽게 말해 한 장의 종이가 만 원짜리 지폐가 되기 위해 한국은행이란 글자, 세종대왕 그림, 10000이란 숫자, 발권 주체를 밝히는 문양을 새겨 넣어야 한다. 그리고 돈을 돈으로 인식하고 사용하는 주체가 있어야 하며 국가가 이 종이에 무언가를 썼다는 사실, "기입"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부채와 돈, 즉 화폐는 다큐멘탈리티의 종속 변수가 된다. 다시 말해 다큐멘탈리티의 동요는 자본의 운동 일반을 불안하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가 아닐까)
2. 우리는 동원된다. 그리고 자본에 종속된다.
18세기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 산업혁명, 20세기 후반후는 미디어혁명, 그리고 2010년 이후에는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다큐미디어혁명이 시작되었다. 컬러 TV의 등장으로 노동자들은 자신의 봉급을 아낌없이 상품 구매에 쓰도록 유혹당하고 있으며 노동에서 소비로, 소비에서 노동으로 이어지는 다람쥐 쳇바퀴 속에 갇힌다. 2010년 이후에는 스마트폰은 가장 세련된 소비촉진기계가 된다. 한편 웹에 저장된 기록들을 소비하ㄴ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기록들의 생산자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생성된 데어터로 다큐미디어자본은 엄청난 잉여 가치를 생산하게 된다. 소비자의 성향과 욕구를 분석하여 팔릴 수밖에 없는 상품을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큐미디어자본은 소비자에게 그 대가를 결코 지불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동원된 자들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라리스 "자발적으로 동원된 자들은 자기 가치화(블로그, SNS 꾸미기 등)가 자기 착취와 함께하는 과정에서 생산수단마저 자기 돈을 지불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3. 자본주의의 목적은 감시가 아니라 소비
다큐미디어자본의 목적은 소비이다. 모든 행동이 기록되는 순간부터 '소비-기록-소비' 사이클 속에 빠지고 소비에 대한 빅데이터와 정보는 우리 욕망에 적중하는 상품을 게걸스럽게 소비한다. 이러한 방식은 무한히 반복된다.
4. 그 많던 노동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자동화와 디지털화는 중간의 일자리를 솎아내고, 고가의 일자리와 저가의 일자리 사이의 간극을 확장하고 있다. 전공을 가로지르는 독창적인 능력이 없다면, 이제 우리에게는 저임금 노동직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그리고 지금의 노동자에게는 이차적이고 부수적인 임무가 있는데 그것은 소비, 오락, 그리고 인간관계이다.
한편 일자리가 줄어듦으로써 소비 역시 줄어들고 그것은 자본의 자살로 이어진다. 이것에 대한 해답은 생산은 기계에게 던져주고 인간은 소비를 담당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소비를 사회적 노동으로 긍정하면서 그 대가를 자본에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본 소득 개념과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5. 동원된 자들의 보헤미안 랩소디!
산업자본이 시대 비참한 삶의 고통을 노동자들은 종교로 잊고자 했다. 미디어시대에는 드라마, 쇼, 스포츠중계로 대체되었고 21세기에는 스마트폰이 아편 공급처로 새롭게 등장하였다. 스펙타클에 매료되어 자기착취에 몸을 던지는 이웃에 대해 페라리스는 현실이 고단하고 비참하기에 인간은 잠시 자신의 상황을 잊기 위해 기분 전환을 하는 것이라며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그렇다면 페라리스는 기분전환의 일환으로 스펙타클에 빠져 현실의 시름을 잊으려는 우리 이웃들을 긍정하는 것일까요? 아니다. 단지 이것조차 하지 않으면 우리 이웃들은 "전쟁 찬성 시위에 참여하기 더 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 히틀러에 열광했던 1930년대 독일에 있었던 600만 명의 실업자)
웹의 세계는 대도시, 즉 메트로폴리스를 넘어서는 에큐메노폴리스가 실현되는 곳이다. 우리의 자유는 극한이 이르지만 그만큼 우리는 외롭고 쓸쓸하다. 각각의 모나드(우주를 반영하는 재현하는 힘으로써)는 거대한 우주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고 그것을 통해 이익을 남기는 것은 자본과 정치권이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자기긍정이 자기 삶과 에너지를 다큐미디어자본이나 다큐미디어정치에 빼앗기는 자기 착취의 공식이라면 어쩌면 타인을 인정하는 타자 긍정은 자신을 착취하지 않는 공식인지도 모른다.
6. 웹페어의 꿈, 혹은 페라리스의 고독
페라리스는 우리 시대 이웃들을 이기적 합리주의자로 보고 있다. 이러한 우리는 웹 활동을 해도 무방하지만, 빅데이터가 낳는 사회적 부를 사회화했을 때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을 생각해 보아야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디지털 웹페어'를 지향하는 '웹페어 선언문'이 등장한 배경이다.
페라리스는 우리와 무관하게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거부하며 실재를 변형하려면, 우리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실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음의 혁명을 잘못하면 정신승리나 신포도 전략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사유에서 만들어지는 혁명들'을 거부하는 페라리스의 마음 알 수 있다.
페라리스에게는 스마트폰, 웹, 키오스크, AI는 실재였다. 그만큼 사회도, 역사도, 인간도 실재였다. 스펙타클에 빠져 구경꾼이 되어버린 이웃들, 타자를 사랑하기보다 사랑받기를 원하는 이웃들, 순간적 쾌락으로 장기적 행복을 그리지 못하는 이웃들.. 이들과 함께 나가는 페라리스의 발걸음은 당연히 무뎌지고 느릴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는 말한다.
"존재한다는 건 저항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울컥 눈물이 나는 순간들이 있었다.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 같이 느껴졌던 고독의 순간, 비참함의 순간들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구나!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치유하고 내가 발딛고 있는 현재를 조금씩 바꾸어 그래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모처럼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요약해 보았다.